국가
-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大韓民國)
등재연도
외국어 표기
- Archives of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소장 및 관리기관
- 한국금융사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독립기념관, 국립고궁박물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한국연구원,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도서관, 연세대 학술정보원 등
본문
한국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국가가 진 빚을 국민이 갚기 위해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열강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모든 대륙에서 식민지적 팽창을 하면서 대부분의 피식민지국가에게 엄청난 규모의 빚을 지우고 그것을 빌미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동원하였다. 아시아 동북쪽의 작은 나라였던 한국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외채로 망국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이미 베트남, 인도, 폴란드, 이집트, 오키나와 등의 국가들도 외채로 나라를 잃은 역사적 사실을 주목하고 있었다. 한국 국민은 외채로 인한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한국의 남성은 술과 담배를 끊고, 여성은 반지와 비녀를 내어놓았고, 기생과 걸인, 심지어 도적까지도 의연금을 내는 등 전 국민의 약 25%가 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한국 사람들은 전국민적 기부운동을 통해 국가가 진 외채를 갚음으로써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려 하였다.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영국 언론인이 한국에서 발행하는 영어신문에 의해도 서방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해외 유학생 및 해외 이주민이 외국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통해서도 해외로 알려지게 되었다. 심지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을 알림으로써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어, 외채로 시달리는 다른 피식민지국에 큰 자극이 되었다.
그 후 중국(1909년), 멕시코(1938년), 베트남(1945년)등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여러 국가에서도 한국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다만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이후에 일어난 운동과 비교하여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으며 가장 긴 기간 동안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적 기부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며 당시의 역사적 기록물이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
그로부터 90년 후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한국에는 ‘금모으기 운동’이라고 하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국가 부도의 위기상황에서 한국 국민은 집에 보관하던 금반지를 기부하는 국민적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을 재현하였다. 나아가 한국의 금모으기운동이 타이, 몽고로 파급되어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2008년 미국발 유럽 금융위기로 경제위기에 직면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도 경제회복모델로 주목받았다.
요약하면, 외채문제는 20세기 식민지-피식민지 국가간, 21세기 선진국-후진국 간의 일반적 현상이며, 외채상환문제는 외채를 탕감할 것인가와 외채를 갚을 것인가로 대립되는 일반적 현상이다. 전자에 ‘쥬빌리운동’이 있다면 후자에는 ‘국채보상운동’이 있다. 이처럼 국채보상운동 정신은 시민적 연대를 통해 채무자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는 인류 보편의 정신이며, 지금도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국가적 위기에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적「책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동아시아, 그리고 유럽 등의 외환 위기에서 보듯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누적적 부채 위기를 극복함에 있어서, 국채보상운동이 국민적 연대와 책임의식에 기초한 경제모델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