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문
국채보상운동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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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요약)

무릇 신인이 忠(충)으로 행하고 義(의)를 숭상하면 나라는 흥하고 백성은 평인들 누리며, 不忠(불충)하고
不義(불의)하면 나라는 망하고 백성의 열함은 고금의 역사에 근거함이라.

...

지난날 일본이 청일 · 러일 전쟁을 치를 때 소국이 대국을 이긴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와 결사대가 있어
피바람의 전쟁터를 흡사 樂地에 나아가듯 하였기 때문이다. 후방의 국민들은 짚신을 삼아 팔고 죽을 먹으면서,
여자들은 반지를 팔아 兵費를 마련하였음이라..

아. 우리 이천만 동포는 국가가 이처럼 위난인데도 결심하는 이 없고 방도를 기획하는 일 한가지 없으니..

나라가 망해도 괜찮단 말씀인지.. 우리의 국채 1,300만원은 대한의 存亡(존망)이 달린 일이라 할지니. 우리가 어찌 월남 등 멸망한 민족의 꼴을 연할 수 있으리오.
이천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라..

아. 우리 이천만 가운데 애국사상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이가 있다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우리가 감히 이를 발기하고.
취지문을 부치면서 피눈물로 복원하노니, 대한의 신민 첨군지는 말로 혹은 글로 서로 전하고 알려 모르는 이가 한시람도 없게하여
기필코 실시함으로써 위로는 聖明에 보답하고 아래로 우리 강토를 보존하기를 천만행심이로다.

대구 군민대회

음력 정월 초 9일에 달구벌 내외 일향 유지신사 서상돈 제씨등 수백명이 북후정에서 대회하니 모인 사람이 남녀노소 무릇 수만 명이라.
신사 박정동씨가 연단에 올라 통론하기를...채주가 독촉하면 필경 강토를 보존 할 수 없을 것이니 우리 백성 장차 어디서 기거하여 생활할 것인가...

"우리가 일용에 무익한 연초를 3개월 기한으로 끊고 그 소모비용으로 각자가 1원씩만 모으면 전국인구에 담배피지 않는 부녀자를 제하여도 1천 2백원이 될 것이니 국채를 갚음이 어찌 걱정이랴"하니 이에 만장일치로 박수갈채하고 각자 주머니를 풀어 의연하니 고취하는 소리 소나기에 물이 넘쳐 흐르듯 함이라...

장지연(황성신문 사장)이 대한자강회 월보 제 9호에 쓴 기사(원문은 한문)

대구 남일동부인회 취지서(전문)

경고(警告) 아(我) 부인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의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삼종지도(三從之道)외에 간섭할 사무가 없사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야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듣사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대전(代錢)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요 진정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은 물론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化育中一物)이 아니리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처로 일신소존(一身所存)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河海)가 가는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물구(物拘)하고 혈심의연(血心義捐) 하와 국채를 청장(淸帳)하심이 천만행심(千萬幸甚)이니라.
정미 정월 십일일(양력: 1907년 2월 23일)
발기인에 대구 동상 남일동
정운갑 모 서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병규 처 정씨 은장도 일개 두냥중
정운하 처 김씨 은지환 일불 한냥구돈중
서학균 처 정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석균 처 최씨 은지환 일불 한냥오돈중
서덕균 처 이씨 은지환 일불 한냥오돈중
김수원 처 배씨 은연화 일개 두냥구돈중

주: 정미 정월 십일일은 1907년 2월 23일, 순한글 고어체를 현대문으로 편집

이 취지문에는 참여한 부인들이 그저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누군가의 아내로만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2015년, 대구여성가족재단에서는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이름 찾기 연구를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남일동 7부인 중 여섯 분의 이름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서병규의 처 정씨는 정경주(1866년~1945년), 정운갑의 모 서씨는 서채봉(1859년~1936년), 정운화의 처 김씨는 김달준(1877년~1956년), 서학균의 처 정씨는 정말경(1881년~1932년), 서석균(서철균)의 처 최씨는 최실경(1888년~1965년), 서덕균의 처 이씨는 이덕수(1889년~1955년)였다. 또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결성 장소가 중구 남일동 109번지, 지금의 구 제일극장 제일빌딩 인근이라는 사실도 함께 확인하였다.

국채보상기성회 취지문(요약)

지난날 이집트에서 영국과 불란서의 차관을 들여올 때에도 처음 마음을 어찌 정부의 화가 되기를 바랐으리오마는
단지 빌리는 사람의 처리가 좋지 못하여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말았으니
대저 국민된 자 - 만약 여러분의 자본을 내어 위로 국가의 수용에 응하고 아래로 국민의 부강을 이룰수 있다면
어찌 즐겨 돈을 희사하지 않고 굳이 가져 있으면서 남에게 구걸하여 빌리려 하리오.

지난날 우리 정부가 진보에 급급하여 들여온 국채가 1300만원이라.
그 마음에 어찌 차관으로 돈을 불려서 국가의 대사업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으리오.
그러나 오늘에 우리 2천만 동포들이 가령 한 사람이 1원을 낸다면 2천만원이요, 50전씩이면 1천만원이니, 백성들이 진 빚을 갚는 일이 어찌 불가능하리오

지난날 보불(普佛)전쟁 때 불란서 국민은 의연금 출연자가 수십 수백만이었고, 또한 집집마다 한 개씩 놋숟갈을 공납했으나, 수백만개의 숟가락에 그 많고 적음과 가볍고 무거움이 어찌 꼭 같을 수 있으리오.
그러나 그 국민이 함께 나라를 부축하자는 마음은 꼭 같은 것이라.
이에 본인 등은 멀리 동래·대구의 여러분들과 뜻을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단합일체하여 회 (會)를 만들었으니,
이름이 국채보상기성회(國債報償期成會)라, 이에 우리 동포는 포고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를 바라노니,
아! 국가가 망하면 국민이 망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여 열심히 하옵시다.
그리하여 뒷날을 기다려 국채를 깨끗이 청산한 연후에 세계 제일의 향기롭고 좋은 담배 수천만 잎을 구입하여,
온 나라 남자·여자·젊은이·어른 모두가 내뿜는 담배바람 속에서 맑은 날의 흥취를 돋우어 봄이 어떠 하리오.

- 이 취지문은 황성신문 1907년 2월 25일 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 27일에 게재-
* 국채보상기성회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자극받아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김성희·유문상·이필상·김병주·오영근 등 24명의 인사가 발기한 단체이다.
이외에도 같은해 4월 8일 대한매일신보사에서 이종필·김광제·박용규·서병규·이면우 등이 발기하여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만들어 전국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단연국보채(斷煙報國債)

황성신문의 사설 (1907년 2월 25일)
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이 준 것인가 때가 온 것인가... 대한 광무 11년(1907년) 새봄의 제일 좋은 소식, 하늘에서 온 복음을 소리쳐 전하도다.

두 손들어 재배하여 한소리 크게 불러 대한제국 만세, 대한제국 동포 만세를 선창하고,
삼백번을 뛰며 삼백번을 춤추며 이 만고의 호소식을 우리 이천만 형제에게 봉헌하노니,
이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대구광문사 부회장 서상돈씨 등이 단연동맹한 호소식이로다.

이제 들은즉 며칠되지 않아 응하는 자 구름 같아서 시정의 상인들은 머리와 힘으로 번 돈을 바치고,
노동자 일꾼들은 다리힘으로 번 돈을 바쳐 벌떼가 날리고 물살이 솟음쳐 흐르듯 하여 오히려 남보다 뒤질세라 두려워 한다니...
실로 우리 국민이 이처럼 쾌오할 줄 요량조차 못하였음이며, 우리 실로 국민에게 이처럼 굳센 힘이 있는 줄 뜻하지 않았음이로다.

우리 감히 믿노니, 이 기회가 한번 동함에 온 나라가 향응하여 장차 6대주의 열국이 우리 대한을 공경하여 따르지 않을 나라가 없을 것이오.
장차 5색 인종과 민족이 우리 대한인을 숭배하지 않는 이가 없어 이 20세기 오늘의 세계에 대한국민 명예로운 이름이 전 지구에 찬란히 빛나리니 장하도다.

우리 손으로 기도하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땅을 내려보며 춤추노니,
뒷날 대한 독립사 제1권 제1장에 대서특필하여 해와 달같이 게재할 일이 단연동맹회의 서상돈 등 제씨가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된 의무를 잃지 말지어다.

황선신문의 사설(1907년 2월 25일)

국채보상가

애국심이여, 애국심이여, 대구 서공 상돈일세
1천 3백만원 국채 갚자고 보상동맹단연회 설립했다네
면실하는 마음 발양하니, 대한 국민 분명하도다.
지금 우리 국가 간난(艱難)한데 누가 이런 열성 가질건가.

대한 2천만 민중에 서상돈만 사람인가
단천군 이곳 우리들도 한국 백성 아닐런가
우리 부채 해마다 이식 불어나니 많은 그 액수 어이 감당하리
적의 공격 없어도 나라 자연 소멸되면,
아아, 우리 백성들 어디 가서 사나.
이 나라 강토 없게 되면 가옥, 전토는 뉘 것인고

여러분, 여러분, 때를 잃지 말고 보상하오.
국채 다 갚는 날 오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 손가.
힘씁시다. 힘씁시다. 우리 단천의 여러분이여.

- 단천 국채보상소의 발기인 이병덕·김인화 등이 만들어 부른 노래 -

공립협회에서 국채보상취지서

대한은 대한인의 대한이요. 남의 나라 국민이 대한은 아니라.
따라서 대한의 흥망과 존멸이 단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요. 다른데서 구할 수 없음은 명백한 일이라...

국채 1,300만원으로 흥망과 존멸의 시기에 있음에 해결방도를 부르짖는 사람이 없더니,
충의의 위대함이여, 시기의 지혜로움이여, 서상돈씨의 국채보상 발기가 바로 나라를 되살리고 백성을 되살리고 백성을 구하는 시작이 아닐 수 없으며,
국채보상기성회의 창립이 어찌 13도가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며, 국민과 정부가 손과 발처럼 서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리오.

시국의 형세는 심히 엄한 것이나 해결의 방책은 심히 쉬운 것이니
비록 조금의 충의심도 없고 우마처럼 어리석고 수석같이 무지한 자라 할지라도 몇 푼 몇 십원의 재물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일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언제가 독립하여 부강해진다면 우리 모든 사람이 스스로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일이니,
이러한 취지를 한 번 펌에 이 지방 회원들이 기뻐하며 사방에서 응하여 제 힘껏 즐겁게 연조한 의금이 일화 201원인 고로 의연자 성명과 액수를 기재하여 보내오며,
일화 140원을 먼저 부치옵고 나머지 보낼 계획이오니 조량하신 후에 추심하시어 수금소에 전하옵기 바라옵니다.

재일본 한인 유학생의 단연동맹취지서

무릇 경제는 국가에 필요하고 긴급한 문제라.
법률로만 국가가 되지 못하나니 로마제국도 경제를 해결치 못하여 드디어 망하였으니,
항차 우리나라가 이처럼 슬픈 지경에 당하였는데 어찌 경제를 강구치 않을 수 있으리오.
경제란 적은 것으로 큰 것을 궁구하여 행하는 것이라.

우리 유학생으로 말하면 근 800명이라. 매일 조일(朝日)담배 한 갑씩이라도 6전이오.
한 달에 한 사람이 1원 80전이니, 백명을 한 달로 곱하면 180원이오. 1년을 통계하면 2,160원이니,
800명으로 계산하여 1년 담뱃값이 적이 않거든 하물며 전국민의 담뱃값이라.

음식물은 끊으면 죽기 때문에 안 될 일이어니와 무익한 연초를 끊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어.
일제히 단연하여 국채의 만분의 일이라도 도웁시다.